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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황현필 역사학자와 노아 스나이

or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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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9 23:28

황현필 역사학자와 노아 스나이더 더 이코노미스트 국장이 5·18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지난 18일 광주민주화운동 45주기를 맞아 역사 유튜버 황현필 강사가 세계적인 경제지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동아시아 국장 노아 스나이더(Noah Sneider)와 함께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월 어머니집, 5·18묘역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이날의 동행취재는 ‘더 이코노미스트’의 노아 스나이더 국장이 황 강사에게 광주 5월 동행 취재를 요청함으로써 이뤄졌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은 국가폭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향한 길을 열었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나 그날의 진실을 기록하고 전하기 위한 뜻깊은 동행이 광주에서 이뤄졌다. 스나이더 지국장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깊이 있게 조명하기 위해 황 강사와 함께 광주를 찾은 것이다.◇5·18민주화운동기록관 방문: 진실의 시작점5·18 동행 취재는 이날 오후 1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시작됐다. 전시관 곳곳에는 1980년 5월의 참상과 시민들의 저항,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난 공동체의 정신이 담겨 있었다. 황 강사는 전시관 해설과 함께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5·18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것은, 역사와의 올바른 단절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오월어머니집: 증언과 기억의 공간이후 방문한 ‘오월어머니집’에서는 김형미 관장과 이정덕 사무총장의 안내로, 1980년 5월 남편과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이야기와 그 이후 이어진 삶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들은 이곳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그림을 그리며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김 관장은 “여전히 많은 왜곡과 폄훼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 공간은 어머니들의 회복을 위한 공동체이자 기억의 장소”라고 전했다.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숭고한 침묵의 시간이후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동행단은 헌화와 묵념을 올린 뒤 윤상원, 문재학, 류동운 열사의 묘역을 찾아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황 강사는 “진실을 지키는 것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스나이더 국장은 열사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며, “폭력에 맞선 공동체의 저항은 국제사회에서도 기억돼야 할 귀중한 역사”라고 말했다.이번 동행 취재[앵커]계엄 사태를 지나고 맞은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은 여러 면에서 되새겨볼 것들이 많았습니다.5·18의 참상이 아직 남아있는 병원이 임시 개방되기도 했는데, 밀착카메라 이가혁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기자]지난해 겨울, 45년 만에 다시 등장한 '계엄령', '계엄군'.고등학생 때 5·18을 겪은 광주 시민 김용희 씨에게 12·3은 곧 5·18이었습니다.[김용희/5·18 당시 고교생 : (작년 12월 3일) 속보가 뜨더라고. 그래서 봤는데 머리가 휑하죠. 바로 5·18 생각이 나니까. 이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되살아난 비극.하지만 동시에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김용희/5·18 당시 고교생 : {5·18 때도 선생님처럼 시민들이 계엄군과 맞서 싸웠고…} 그렇죠. {12·3 내란 사태 때 국회 앞에서도…} 그렇죠. 나는 정말 감명받았어요. 그 용감한 시민들… 정말 대단하죠. 총 든 계엄군들 앞에서.]이 낡은 건물은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습니다.아픔이 서려있는 곳이자, 시민의식이 빛났던 곳, 바로 옛 광주적십자병원입니다.이곳엔 당시 응급실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습니다.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시작하자 이곳엔 총상을 입은 시민들이 계속해서 밀려왔다고 합니다.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까 저 응급실을 넘어서 이 복도와 그리고 다른 진료실까지 피 흘리는 시민들과 의료진이 뒤엉켜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이런 비극적인 순간에도 광주 시민들은 서로를 도왔습니다.피가 모자라다 헌혈이 필요하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이와 어르신까지 시민들이 모여서 이렇게 자신의 피를 나눴습니다.2014년 문을 닫은 후 11년 만에 이번달까지만 잠시 개방됩니다.오늘날의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듯합니다.[이윤주/서울에서 5·18 맞아 광주 방문한 시민 : {살면서 내가 계엄령을 겪을 거다?} 전혀 생각을 못 했죠. 아무래도 민주화가 됐고 계속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걸 겪고 나서 다시 오니까 '진짜 정말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최동환/오월 안내해설사 : 특히 12·3 사태 이후에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도 훨씬 폭넓게 올라가다 보니까 특히 외지 손님들도 많이 오십니다.]45주년을 맞은 이번 5·18의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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