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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지난 주 폭우가

feo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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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24 00:07

[KBS 광주] [앵커]지난 주 폭우가 특히 두려웠던 지역, 5년 전 물난리를 겪은 구례였는데요.이번 폭우 때도 애써 준비한 배수펌프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그런데, 이 펌프장을 취재해 보니 재난 상황 때 가동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고, 3년 전부터 문제를 알았는데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찾아가는K 김대영 뉴스캐스터가 취재했습니다.[리포트]오이를 재배하는 구례군 사도리의 한 비닐하우스.수확을 일주일 앞둔 오이는 뿌리가 상했습니다.예상 수확량의 3분의 1만 건져도 다행인 수준입니다.[최병수/오이 재배 : "햇볕 나면 금방이야, 저것도 지금 다 죽었어."]17일 하루에만 218㎜의 비가 내리며 침수 피해가 커진 저지대 비닐하우스.대처할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2020년 수해 대책으로 지난해 3월 완공된 '사도 배수펌프장'이 비닐하우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하지만, 시간당 최고 50밀리미터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17일 새벽부터 밤까지 펌프장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담당자들은 CCTV로 상황을 보고 있었고 현장 확인도 했지만,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해 사도 펌프장을 가동하지 않았습니다.그 판단과 달리, 농민은 오후 5시부터 양수기로 직접 배수로 물을 빼내고 있었고 밤 9시엔 펌프장을 가동해 달라고 구례군에 요청했습니다. 10분 뒤에 군 담당자가 도착했고 1시간 뒤에는 또 다른 공무원이 왔지만 펌프장은 가동되지 않았습니다.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펌프장에 추가 전기 가설 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유사시에만 예비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상태였던 겁니다.결국 밤 10시 50분쯤 구례군이 한전에 연락했고, 펌프장은 밤 11시 50분에야 가동될 수 있었습니다.농민이 직접 양수기를 끌고 나온 지 6시간, 구례군에 요청한 지 3시간 만입니다.지금은 물이 빠져 있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침수 흔적이 가득합니다.이 일대 농경지가 비슷한 피해를 겪었는데요. 배수펌프가 제 역할을 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더 큰 문제는 다른 배수펌프장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단 겁니다.지난해 3월 완공된 구례 펌프장이 7곳 가운데 4곳이 예비 전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마찬가지로 케이블과 전봇대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혼재된 스페인 최남단의 자치주 ‘안달루시아’로 떠났다. 첫 번째 목적지는 주도인 세비야다. 과달키비르 강이 흐르는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는 플라멩코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열의 춤을 비롯해 세비야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5가지 핵심 키워드’를 소개한다.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거리의 예술가들 No.1 세비야 여행의 시작점, 산타크루즈지구 구슬픈 집시의 노래에 이끌려 발걸음을 재촉하며 도달한 곳,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을 비집고 들어가 그 속을 들여다보니 연주자의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긴 댄서의 움직임이 군중을 압도한다. 한 명의 댄서와 한 명의 연주자, 두 사람의 완벽에 가까운 합일은 댄서와 연주자의 경계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세비야 도심에서 한 블록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거리의 예술가들. 거리는 곧 무대로 통한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거리이자 무대, 세비야 여행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 바로 ‘산타크루즈지구’다.산타크루즈지구만 둘러봐도 세비야 여행의 8할이 채워진다. 그도 그럴 게 세비야 여행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대성당과 첨탑, 궁전 및 정원 등 역사를 품고 있는 관광명소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비야의 구시가지라 일컬어지는 산타크루즈지구는 역사적으로 안달루시아를 넘어 스페인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자리했던 ‘유대인지구’로 통용돼 왔다. (좌)산타크루즈지구 거리 풍경 (우)대성당과 궁전 주변 광장 1248년 무슬림 지배하에 있던 도시를 정복한 기독교의 왕 페르디난도3세가 유대인에게 이 도시를 넘겨준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약 200여 년간 세비야는 유대인 도시로 각광받았지만 1492년 스페인 전역에 종교분쟁이 일어나면서 이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이 추방당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당시 부흥했던 도시의 면면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산타크루즈지구가 가진 독특한 건축 구조적 특징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옛 유대교 시대의 풍경은 좁은 거리와 미로처럼 나 있는 골목길이 중심이 된다. 미로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은 동네 곳곳에 흩어져 자리한 광장이다. 산타크루즈 광장을 포함해 다섯 곳의 광장이 좁은 거리와 골목길을 이어주는 구조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옛 교구 교회와 유대교 회당은 18세기 들어 대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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