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락 오바마 대통령 퇴임 연설 中두려움으로 인한 비난과 비슷한 양식을 보이는 건 또 있습니다. 두려움에 바탕한 시기로 인한 여성 혐오입니다. 여성들이 내 삶을 뒤흔든다는 깊은 불안과 분노 때문입니다. 반대로 남성 혐오는 불만으로 인한 분노, 보복에 대한 염원이라고 덧붙입니다.타인에 대한 연민 / 마사 누스바움 저, 임현경 역 / 알에이치코리아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인 미국의 노학자 마사 누스바움. 현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우리 시대 만연한 혐오에 대한 주제를 다룬 그의 책들을 기회 되면 몇 권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감명 깊게 읽었던 <말이 칼이 될 때>의 홍성수 교수님의 추천사가 들어간 <타인에 대한 연민>부터 읽어봅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中증오, 혐오, 분노는 두려움을 먹고 자랍니다.즉각적인 거부감에서 시작되는 혐오는 특정한 집단에 투사되어 그들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中두려움은 분노-비난과 결합할 때 수많은 부적절한 행동을 추동합니다. 이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부재가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두려움은 분노의 전제 조건일 뿐만 아니라 분노의 오류에 불을 붙이는 독입니다.혐오의 시대에 노철학자가 제시한 해법은 자기 성찰이며 그에 앞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누군가를 맹렬히 비난하는 일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더 어렵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우리 내면의 조그마한 감정의 변화로부터 시작됨을 강조합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인류애에 기반한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작은 발자국을 떼는 힘이 됩니다. ‘호밀밭’에 심을 씨생강을 다듬는 나무네 부부. 6년 전 이맘때, 지금 살고 있는 인천 귤현동에 처음 집을 보러 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동네로 들어오는 동안 밭이 펼쳐졌고, 작은 단층 빌라 옆마다 텃밭이 하나씩 있었다. 한국에도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작은 정원’이란 뜻으로 농막과 작은 텃밭을 함께 분양하는 도시농업 구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동네의 텃밭들은 계획적으로 조성된 것도 아닌데다 재개발이 진행 중이었는데, 동네 풍경을 이상하게도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건물을 짓지 않은 땅마다 누군가 텃밭을 일구고 있었고, 그런 땅이 많아 마치 빌라마다 작은 텃밭이 딸린 모습이었으니까. 안타깝게도 3기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그 많던 논밭이 공사장으로 변했고, 텃밭이었던 땅에는 건물이 하나둘 지어지고 있다. 이제는 텃밭을 할 만한 땅이 숨은 보석같이 드물어졌다.‘동네 사람’이라는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그런 땅을 쓸 수 있는 정보는 알고 지내는 이웃이 많은 진짜 동네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레기 문제로 주말농장 주인 할아버지와 옥신각신하던 그날, 내 틀밭 일부분을 함께 쓰고 있던 동네 친구 나무가 뜻밖의 정보를 전해줬다. “우리 집 주변 빌라 부지에 농사지을 사람을 구한다는 팻말이 있는데 거기 한번 같이 알아볼래요? 사실 저도 쓰고 싶었는데 너무 넓어서 엄두가 안 났거든요.”나무의 안내로 단숨에 달려가 팻말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 땅 바로 앞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전화를 받고 나와 젊은 사람들이 이 땅을 쓰겠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며 연간 사용료로 25만원만 달라고 했다. 삼면이 빌라에 둘러싸여 있지만 지금 밭보다는 해도 잘 들고 평지에 땅도 넓었다. 140평 빌라 부지를 조금씩 쪼개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차장과 작은 텃밭을 분양했고, 할머니가 농사짓는 공간도 있지만 절반 정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 자리에서 네고도 없이 쿨하게 입금을 마쳤다.새 밭이 생겼으니 텃밭 이사라도 가볼까?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마음속으로는 텃밭 이사 계획까지 마쳤지만 며칠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