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 Jeremy Piret건물의 위치와 오각형 형태의 평면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동네 안쪽에서 보면 전통적인 박공지붕 형태로 보이도록 디자인하여 작은 규모의 이웃집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반면에, 탁 트인 바깥쪽 풍경을 향해서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독특한 실루엣으로 디자인되었다.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아브쿠드Abcoude, 그중에서도 변두리에 새로 개발된 주거 지역인 ‘드 빙켈부르트De Winkelbuurt’의 수로 옆에 지은 주택이다.architecture: Studio Vincent Architecturestructural engineer: De Ingenieursgroep이 집은 본채와 별채로 이루어졌다. 두 채 사이에는 입구의 별채에 의해 가려진 마당이 형성되었다. 두 건물 모두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그중에서 입구의 별채는 외부에 창문이나 문이 전혀 없는, 완전히 폐쇄된 구조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길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여우굴의 양개형 대문을 열면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인다.여우굴? 지능적인 설계로 맥락에 최적화한 단독주택Foxhole천정을 터서 지붕 구조를 드러낸 2층은, 콤팩트한 구조로 평면을 계획한 다음,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공간을 구분하는 용도로 붙박이 가구를 적극 활용하였다.에너지 효율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였다고 한다. 단열 강화, 지역 냉방과 결합된 일반 난방용 히트 펌프, 그리고 열 회수 환기 시스템을 통해,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도 쾌적한 실내 환경이 유지되도록 했다.by Studio Vincent Architecture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에 이 집의 중심 역할을 하는 주방이 위치해 있다. 인접한 다이닝룸과 거실에는, 정원으로 통하는 대형 슬라이딩 창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실내와 실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location: Abcoude, The Netherlands지붕면에 맞춰서 매끄럽게 설치한 26장의 태양광 패널을 통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생산된다. 그 밖에도, 태양의 경로에 최적화한 위치에 창호를 설치하여 외부의 열을 유입하고 내부로부터의 열 손실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했다.이 집은 일몰을 포함한 자연광이 실내를 가득 채우도록 설계되었다. 내부는 기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공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계획되었다. 1층은, 전통적인 벽체 대신 입구와 거실 사이를 구분하는 대형 수납장을 설치하여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completion: 2024“만성질환을 치료할 때는 치료 과정 역시 만성적이다. 죽는 날에나 끝이 난다.”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인류학자,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아네마리 몰이 쓴 ‘돌봄의 논리’(김로라 옮김, 임소연 감수, 갈무리 펴냄)가 출간됐다. 저자가 당뇨병 클리닉의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현장 연구하고 텍스트 분석과 전문가·환자 인터뷰를 통해 얻은 지식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몰은 환자의 ‘선택권’ 개념을 비판한다. 환자의 선택권이 강조되면 돌봄의 복잡성과 윤리적 책임은 숨겨지기 때문이다. 환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의료진, 환경, 기술 등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자기 돌봄을 실천하는 ‘능동적 주체’라는 것이 책의 대전제다.몰은 병을 앓는 삶 또한 삶이며, 나아가 좋은 삶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하고, 연약하면서도 즐거움을 경험할 방법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돌봄’은 환자의 상황을 개선하고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끈질기고 관대하게 노력하는 일을 가리킨다. 몰은 시장에 조정을 맡기기보다, 시민으로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선택을 조율하자고 제안한다.또 기존 ‘돌봄’ 개념을 적극적으로 확장해 ‘의사 노릇’(doctoring)이라는 개념으로 선보인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가족 등 돌봄팀 전체가 이 의사 노릇을 공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봄팀 각자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며 전문 지식의 독점을 풀고 개방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함께 실험하고, 경험하고, 수정하자는 꽤 이상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환자가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무언가를 결정하고 결과를 모조리 책임지는 의료 소비자 개인’에 머물지 않으려면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의료 기술이 ‘서비스’가 되며, 환자가 ‘소비자’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 행위자는- 설령 자기 삶일지라도- 한 인생의 구경꾼이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각자 주체가 되는 ‘살다’라는 동사라고 저자는 힘줘 말한다.물론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과
환자가 자기 돌봄 능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치매는 다르다. 명백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이 있는 암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뿐 아니라 다른 질병에서도 돌봄의 논리를 확장하고 번역하는 실천이 잇따라야 한다고 몰은 당부한다. 분명한 건, 지금 이대로 타자화의 시간과 질병의 경험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320쪽, 2만2천원.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21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