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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우리 아들은 B형 간염인데도 군대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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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29 05:34

“우리 아들은 B형 간염인데도 군대 다녀왔다.”쉽게 말해,“급성간염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군 면제는 절대 안 됩니다.병역 특혜 논란은 언제나 정치 신뢰를 갉아먹는 독성 바이러스와 같습니다.그럼에도 주 의원이 “급성간염”만을 언급하니, 국민 입장에서는 “우리 애는 B형 간염인데도 군대 다 갔다 왔는데?”라는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우선 상식부터 점검해봅시다.“당시 병역 판정 결과에 대한 객관적 기록을 한 번 보여주실 수는 없나요?”국회에서 한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검사집안라서, 수십억 재산을 소유한 금수저라서, 정치인이니까 봐줬다”는 오해는 절대 피해야 합니다.이정도면“집단 고의 기피”의혹까지 번지며, 병역 면제가 마치특권층의 유산처럼 여겨진 시대도 있었죠.글:나무그늘 사진: 네이버 유튜브 캪쳐"정확히 어떤 상태였는지" 국민 앞에 설명해주시죠.‘당구를 500치는 기똥찬 시력을 가지고 있는데 군대 갈때는 부동시 눈이 안 보여서’그 마음,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의원님, 정작 국민이 궁금한 건 그게 아닙니다.간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회복이 어려운 경우, 혹은 만성 간염으로 이행되었을 경우에만 4급(보충역), 5급(전시근로역), 6급(병역면제)이 검토됩니다.이럴 경우 병역면제는 가능합니다.주진우 의원은 박선원 의원에게 “내 병명을 언급해 사과하라”고 했습니다.정치인의, 병역은 ‘민감함’이 아니라 ‘책임’입니다이게 현실입니다. 국민은 잊지 않습니다.“급성간염”이라고 했지만… 진짜는 만성간염 아니었을까?하지만 그 민감함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책임의 영역이어야 합니다.치료 중이면 일시적으로 재검 대상(7급)중국산을 북한산으로…반입 사례 증가중국은 협조 거부, 북한은 모르쇠 일관수교 체결로 소통 시작…대책 마련 첫발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중국산 물품이 북한산으로 둔갑해 국내로 반입되던 문제가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를 계기로 해결의 첫발을 뗄 수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더팩트|김정수 기자] 부산 세관은 1991년 6월 24일 국내 수산물 업체가 중국 수출 업체와 결탁, 중국산 냉동 홍어 등을 북한산으로 위장 반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북한산 물품은 남북교류촉진법에 따라 무관세로 수입됐는데, 이를 악용했다는 것이었다.문제의 국내 업체는 "중국 업체가 대련에서 출항해 북한 신의주에 입항했고, 냉동 홍어 등을 적재한 뒤 한국으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외무부(외교부)는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중국 대련 해관 당국'과 '북한 대사관'에 사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먼저 주북경 대표는 1991년 7월 중국 요녕성 대외경제무역위원회에 대련 세관이 '수출허가증'을 발급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이에 무역위는 "발급한 사실이 없다"며 구두로 답했다. 주북경 대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공문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무역위는 어찌 된 일인지 이를 거절했다.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중국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까닭은 양국 수교가 체결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 사건 외교 전문에는 '중국 정부는 양국 간 외교 관계 부재를 이유로 공문상 사실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적혀 있다. 한중 수교는 1992년 8월 24일에야 이뤄졌다. 주북경 대표가 정부에 보낸 외교 전문. 중국 정부가 외교 관계 부재를 이유로 협조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외교부 이후 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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